나의 Rinko

나는 당신에게 밤을 팔았습니다2020. 9. 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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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비 사이 아직 눅눅한 공기가 가득했던 지난 외출에 '그랑핸드'를 갔었다. 북촌 좁은 골목에서 만난 그 자그마한 가게가 벌써 7년째 향을 만들고 있다는 건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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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그곳, 조막만 한 현무암 위에 덮여 있던 'Rinko'는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주말 다시 그곳에 들러 그 향을 집으로 가져온 건 별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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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풀 내음이 나는 이 향기를 잊지 못한 건 내내 'Rinko'라는 이름이 마음에 닻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으로 내게 떠오르는 사람은 '川内倫子: Rinko Kawauchi' 단 한 명뿐이었다. 일본의 사진작가인 그녀를 알게 된 곳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연남동의 책방이었다. 하얀 접시 위 다 먹은 수박 껍질과 뱉어둔 씨앗이 전부인 표지 위로 따끔한 오월의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사진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첫날이었다. 아쉽게도 그 책은 비매품이었고 절판됐던 터라 외국을 통해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부턴 일본을 갈 때마다 동네 중고 서점을 들락거리며 그녀의 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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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센터 취미반으로 사진을 시작한 그녀는 특별한 피사체를 담는 것도 훌륭한 구도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 가까운 곳의 삶과 죽음, 거기에 있는 것을 인화지 위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작품을 볼 때, 들풀 한 무더기를 떠올리곤 했다. 마당 돌 틈, 콘크리트 담장 깨진 곳을 비집고 나와 거기 있는 줄도 모르게 아름다웠다가 시들었다가 사라지는 짙은 초록의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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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나의 'Rink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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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속 그녀를 나는 눅눅한 어느 계절의 틈 속에서 만났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까지가 나의 'Rinko'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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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野 源 - おもかげ (House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