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Druk, 2020)

필름 코멘트2022. 1. 17. 06:51

   반야탕(般若湯) 아니면 지수(智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럼 미혼탕(迷魂湯)이나 화천(禍泉)은요? 사실 이 단어들은 모두 승려들이 술을 완곡히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반야는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prajna'를 음역한 말이죠. 그러니까 반야탕은 '지혜의 물'이란 뜻이고 지수 또한 비슷한 말입니다. 반면, 미혼탕은 '사람의 혼을 미혹하여 지혜를 흐리게 하는 물', 화천은 '모든 화의 원천'이란 뜻이구요. 술이 가진 명암을 잘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인생의 회의를 느낀 중년들, 마르틴(Mads Mikkelsen 분), 토미(Thomas Bo Larsen 분), 피터(Lars Ranthe 분), 니콜라이(Magnus Millang 분)가 반야탕으로서의 술을 이용해보려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알코올농도(BAC) 0.05%(음주운전 위반은 0.03%)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노르웨이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Finn Sk rderud)의 가설을 근거로 삼고 있죠. 학교 수업이나 가정의 문제까지 술은 실제로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듯합니다. 그러나 술은 이내 화천의 모습을 드러내고 피터를 죽음으로 인도하죠.

 

  영화는 언뜻 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삶, 그중에서도 절망에 빠진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가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걸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안정적인 직장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까지.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의 삶은 평온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이 바라는 행복에 가까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행복의 깊숙한 곳, 이곳이야말로 절망이 가장 편안하게 머무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절망'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말하죠.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취해있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상태라는 거죠.

 

  절망.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빙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는 어떤 치료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다들 자신은 누구이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고백하죠. 정신과적으로는 이런 과정을 병식(insight)이라고 얘기합니다. 즉, 병에 걸린 상태를 인식해야 회복이 가능하단 뜻인데 쉽게 말해 우리가 감기에 걸린 줄 알아야 감기약을 찾는 것과 같죠.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졸업 시험을 망칠까 두려워하던 세바스티안의 시험 주제가 바로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이었고 그것의 핵심은 '실패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니까요.

 

  절망한 사람들은 이층에서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지하층을 고집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이층이 비어있으니 그곳으로 옮기라 말하면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인간은 정신을 최고로 발휘할 때 가장 인간적이지만, 사람들은 굳이 그보다 낮은 감성과 쾌감의 상태에만 머무르려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죠. 토미가 마지막으로 마르틴에게 "이건 가치가 없어. 이렇게 되지 마."라고 말한 것은 마르틴과 아니타의 관계를 위한 말임과 동시에 어서 이 지하층을 벗어나라는 메시지죠.

 

  저는 이들의 삶이 거대한 댐처럼 보였습니다. 풍부한 수원을 확보한 댐은 그 자체로 보면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죠. 그러나 고인 물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그건 곧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댐은 그동안 모은 물이 아까워도 분명 어느 순간엔 흐름이 필요하고 따라서 수문 개방은 불가피한 일이 됩니다. 그런 일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에게 술은 마치 들이붓는 장마 같은 이변이었던 거고 댐을 어쩌면 삶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수문을 열었던 거겠죠.

 

  우리는 모두 절망할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취하고 깨지고 실패하고 삶이 계속되는 한 그럴 겁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린 절망을 마주 봐야 합니다. 그의 생김새를 성격을 그리고 헤어질 방법을 끝없이 탐구해야 하죠. 춤을 추던 마르틴이 그렇게나 멋져 보인 건 어쩌면 더는 물러나지 않고 삶에 자신을 내던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