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판 남자 (The Man Who Sold His Skin, 2020)

필름 코멘트2021. 12. 2. 22:54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피부를 판 남자> 홍보 문구 하나를 보고 가시죠.

 

  ※ 이 작품은 살아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영화는 시리아의 정치적 상황으로 범죄자가 된 '샘'이 사랑하는 연인 '아비르'를 떠나 레바논으로 밀입국 하며 시작됩니다. 1년 후, '아비르'는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었지만 그녀를 잊지 못한 '샘'은 그녀가 사는 벨기에로 가기 위해 세계적 예술가 '제프리'의 작품이 되기로 하죠.

 

  영화는 작품이 되기로 한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 관계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보고자하는 관계에 따라 예술, 인권, 자유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주제들이 한 겹 가려져 있거나 서로 너무 밀착되어 있어 따로 떼놓고 보기는 어렵죠.

 

  여기서 우리는 배경이 되는 지역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영화를 맨 처음으로 돌리면 2011년의 시리아가 나옵니다.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당시 시리아는 자유를 열망하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정부가 맞부딪쳐 내전이 시작됐죠. 이로 인해 실제 시리아 난민이 많이 발생했고 인접 국가인 레바논엔 당연히 난민들이 몰려들었죠.

 

  '샘' 역시 그 사람들 중 한 명 입니다.

 

  그리고 그 '샘'이 사랑하는 '아비르'를 만나기 위해 떠난 나라가 바로 벨기에죠.

 

  작중 배경으로 왜 벨기에를 선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를 이해할 만한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1. 벨기에는 유색 인종 차별이 있는 국가다.
  2.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무슬림 비율이 높다.
  3.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행위가 있었다. (브뤼셀 테러, 리에주 테러 등)

 

  사랑을 위해 벨기에로 떠났지만 사실 '샘'이 살기에 그곳이 좋은 곳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닌 작품으로서만 존재해야 했고 영화 내에서도 그는 호텔에만 머물며 [집]이라는 공간을 잃어버립니다. 

 

  '샘'의 등에 [쉥겐 비자]를 새긴 후 '제프리'가 말했던 "이 시대엔 작품이 인간보다 자유롭다."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겠죠. 개인으로선 벨기에로 갈 수도 없고 환영 받지도 못하는 '샘'이 그곳에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가 '제프리'의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등장하는 지역은 스위스 입니다. 영화에서도 슬쩍 언급되지만 스위스는 법으로 공창제를 인정하는 몇 안되는 국가 입니다. 개인 수집가인 '크리스티앙'에게 '샘'이 작품으로서 팔릴 수 있던 것도 이런 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거죠. 재밌는 건 '크리스티앙'의 이름을 [기독교인]으로 해석해서 보면 [기독교인]이 [무슬림]을 샀다고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더욱이 그가 작품을 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부인(Frau - 이름의 뜻 자체가 부인이죠.)의 한마디 "악마가 서명 했다."는 점이 또 웃음 포인트.

 

  이제 세계적인 작품으로선 가치가 높아진 '샘'이지만 여전히 그는 한 명의 [인간]이죠. 그건 바뀌지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고 '샘' 역시 [개인]으로 존재하길 갈망합니다. 경매장 씬은 이를 아주 잘 드러내죠.

 

  낙찰될 때까지 표정 하나 없던 그가 무대를 내려와 입찰자들 사이에서 이어폰 줄을 꺼내 들며 폭탄 터뜨리는 시늉을 합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 경매장을 빠져나가고 혼자 남아있던 '샘'은 경호원 품에 누워 아주 크게 웃습니다.

 

  그가 테러범일 거란 불편한 생각이 들고서야 모두가 그를 작품이 아닌 그곳에 존재하는 한명의 [개인]으로 인식한 거죠. '샘' 또한 그제서야 본인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구요.

 

  맨 처음 언급했던 홍보 문구 기억하시나요?

 

  ※ 이 작품은 살아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불편을 주는 대상이야 말로 살아있다는 겁니다.

 

  이후엔 '제프리'의 계획으로 전 세계를 속이고 '샘'은 [자유인]이 되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의외인 인물이 아주 의외의 행동을 합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영원한 눈나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 '소라야'죠. 그녀 역시 '제프리'의 계획에 속아 '샘'의 (가짜)죽음을 TV로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소라야'는 '샘'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를 [난민]으로 여기며 적선을 베풀려 하죠. 이런 '소라야'의 행동은 [난민]을 바라보는 아주 일반적인 시선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하며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동정의 대상. '샘'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으로만 대했던 '제프리'와는 대조적이죠.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소라야'가 '샘'의 여권을 훔쳐 숨기는 행위나 기자를 대신한 '제프리'의 [포주]라는 말은 그녀야말로 '샘'을 착취하고 있다고 보여주죠. 그녀가 보여주는 이런 이중성은 [난민]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모두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샘'을 작품으로서만 대한 '제프리'만이 그를 벨기에로 데려왔으며 치료했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니까요.

 

  <피부를 판 남자>는 결국 [난민] 그리고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죠. 그들을 착취하는 건 당연히 나쁜 일이지만 그저 동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동등한 입장으로, 공정한 거래와 계약을 할 [사람]으로 우린 그들을 마주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