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France, 2021)

필름 코멘트2022. 1. 5. 21:42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나 크레딧 없이 '프랑스(레아 세두)'의 통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에 대해 분명한 이유나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납득할만한 시작이죠.

   '프랑스'는 우리 나라로 치면 (잘나가던 시절의) 손석희와 유재석을 섞어 놓은 정도의 저널리스트로 그려집니다. 자신의 얼굴을 내건 (이름이 아닙니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죠. 게다가 궁전 같은 집, 화려한 의상, 소설가인 남편과 아들까지 갖춘 삶이면서도 분쟁 지역의 현장 취재 또한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구요. 재밌는 건 이와 같은 그녀의 삶이 러닝 타임 딱 절반 이후 똑같아 보이지만 다르다고 느껴진다는 겁니다.

 

   예컨대, 영화 초반 사헬에서의 인터뷰는 그녀가 카메라 위치나 장면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본분을 잊진 않았죠. 그러나 영화 후반 바다로 국경을 넘는 난민에 대한 취재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바다에 발이 빠지는 걸 원치 않아 다른 이에게 업혀 배에 탑승한다던가 난민과 같은 배를 타지 않았음에도 그들과 동행한다고 녹화하는 장면 등에서 그걸 알 수 있죠. 최종적으로 방송되는 편집물에서의 그녀는 전과 같지만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그녀는 이전과 아주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영화는 '프랑스'가 이렇게 바뀌는 과정을 별다른 설명 없이 보여줍니다. 물론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대중의 관심, 사랑의 배신, 남편과 아이의 죽음 등 변하지 않기엔 너무 큰 굴곡이죠. 심지어 그녀의 하차 방송에서 그녀의 매니저 또한 그녀를 '저널리스트'라 부르지 않고 '아티스트'라 칭합니다. 자신을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했던 '프랑스'는 이런 간극에 지쳤고 낙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서 잠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죠. 통화를 끝낸 '프랑스'는 엘리제궁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에게 "현재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반란적' 상황에 대해 무관심인지 무기력한지" 묻죠. 이때 "개선의 여지는 많고 무관심한 적은 없었다"는 대통령의 답변은 국가인 '프랑스'에 대한 답변이자 영화 내 인물 '프랑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 다니엘과의 인터뷰에서 다니엘이 계속 얘기하는 '사람은 늘 변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나는 곡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유의 <스물셋>인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이 곡은 대중과 자아의 간극을 노래하고 있죠. '엉망으로 굴어도 사람들은 내게 매일 친절해요.'나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이라는 가사가 '프랑스'와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고양이가 말했다.

   초반 한 시간 동안의 '프랑스' 그리고 후반 한 시간의 '프랑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닙니다. 혹은 둘 다 거짓일 수도 있겠죠. 그녀는 그저 현재 최선의 방향을 선택할 뿐이니까요. 이 영화에서 레아 세두가 빛나는 건 화려한 의상 때문이 아니라 이런 모호한 이중성을 훌륭하게 연기해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화는 '프랑스(국가)'와 '프랑스(레아 세두)'를 교묘하게 섞어서 이야기합니다. 철저하게 한 인물의 인생을 고찰하는 듯하지만 곳곳에 프랑스의 현실을 까는 요소도 넣어 두었죠. 예를 들어, 사헬은 실제로 프랑스군이 주둔하며 자하디스트를 막고 있는 지역이죠.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록 프랑스는 그들을 근절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재는 지역 주민들이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여기에는 군사적,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나 여하튼 프랑스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마크롱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상태죠. '프랑스(레아 세두)'가 차 사고를 낸 '바티스트' 집에 방문해서 하는 대사, '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는 결국 '프랑스(레아 세두)'의 말이기도 하지만 '프랑스(국가)'의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경제적으로 부유하나 자녀가 하나뿐인 가정, 행복의 조건을 갖췄으나 우울증 상담을 받는 장면 등에서 나타나는 이중성은 실제로 '프랑스(국가)'가 겪고 있는 문제기도 하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레아 세두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 그리고 파란 눈동자는 프랑스 국기를 떠오르게 하며 이런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진보와 이상은 다 죽었고 이제 현재만이 남았다.'

   영화 속 '프랑스'의 풀 네임은 France de meurs이죠. 'de meurs'가 '죽다'와 '부활하다'의 이중적 뜻이 있다는 건 아마 이런 맥락에서였을 겁니다. 진보와 이상을 꿈꾸던 프랑스는 죽었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살아 있죠. 그럼 이제는 변할 때입니다. 프랑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