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송 (2020)

필름 코멘트2022. 1. 6. 02:29

  새벽같이 배송된 재료들로 아침을 해 먹고 현관 앞에 세탁물을 놔두면 수거해 가는 말 그대로 딜리버리 전성시대. 혹시 이런 것까지 배달해주나 싶은 것들도 요즘은 다 되죠. 영화 <특송>은 이런 생각의 종착점입니다. 우체국, 택배사들은 안 받는 것까지 다 배송해준다는 백강산업 '백사장'의 대사는 <특송>이 뭔지 단번에 알게 해주죠. 주인공 '은하'는 이 <특송>을 담당하는 배달 기사 구요.

 

   어느 날, '백강산업'으로 밀입국을 위한 평택항 배송 의뢰가 들어오고 '은하'가 이 일을 맡습니다. 약속된 시간, 의뢰인은 보이지 않고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가 괴한들에게 쫓기며 '은하'의 차로 달려옵니다. 배송사고는 책임지지 않는 <특송>이지만 다급한 목소리에 결국 아이를 태워 그곳을 벗어납니다.

   의뢰자였던 '두식'은 죽고 그의 아들 '서원'만 남은 상황. '은하'는 범죄 조직이 아이를 쫓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갈등하지만 '서원'을 안전한 장소까지 옮기는 것을 목표로 그들과의 사투를 선택합니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은하'의 카체이싱을 보여주며 액션에 대한 기대감을 높입니다. 신시사이저의 전자음과 베이스의 쿵쿵거림이 있는 레트로 음악은 여기에 긴장감을 더해주죠. 묘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과 음악은 묘하게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를 떠오르게 합니다. 후반부 샷건 액션을 펼치는 '백사장'에게서는 <베이비 드라이버> '교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요. 물론 두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묘한 기시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은하'를 계속해서 아줌마라고 부르는 '서원'과 그를 지키는 '은하'. 어딘가 <아저씨 (The Man from Nowhere, 2010)>의 냄새가 나죠.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사실은 경찰이었다는 설정도 뭔가 뻔하구요.

 

   영화는 이처럼 많은 클리셰에 기대고 있습니다. 물론 클리셰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건 흥행 공식과도 같은 거니까요. 어떤 면에서 <특송>은 클리셰를 잘 이용했다고 봅니다. 영화 초반 카체이싱도 '은하'와 '서원'의 유대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았지만 즐거웠고, 이해됐으니까요. 다만, 이것들을 연결하자 구조적인 결함이 발생했다는 데 문제가 있죠.

 

   카체이싱과 음악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액션이 '은하'와 '서원'의 드라마로 넘어가면서 동력을 잃습니다. 음악도 휴양지로 떠날 것만 같은 Cardigan Club - Follow You만 맴돌구요. 결국 액션은 제쳐두고 캐릭터들에게 집중하는데 이분들, 너무 평면적이라 흥미가 생기질 않습니다. 악의 축을 담당하는 '조경필'은 물론이고 '은하', '서원' 모두 빈약한 서사에 희생됩니다.

 

  모든 영화가 완벽한 내러티브나 개연성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액션이나 히어로 영화 등은 특히나요. 타당하지 않아도 즐겁게 볼 수만 있다면 그것대로 그 영화는 가치가 있겠죠. 하지만 <특송>은 배송사고를 겪었고 결국은 오배송하고 했다고 봅니다. '은하' 집에 걸려 있던 네온사인을 예로 들어 보죠. 거기엔 "NO GUTS NO GLORY"라 적혀 있는데 이게 한번에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녀가 탈북자기 때문에 용기 없이는 영광이 없는 것이었고 그 한번의 용기엔 많은 희생이 따랐으며 그게 '서원'을 지키려는 원동력이었다는 서사가 관객에게 배송됐어야 했는데 그걸 실패한 겁니다. 이런 생각을 잊을 만큼 속도감 있는 액션이 계속 됐던 것도 아니었구요.

 

  쓰다보니 아쉬운 소리만 했는데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분명 빛났습니다. 악역을 맡은 송새벽도 액션을 해내는 박소담도 멋졌지만 어쩐지 '서원' 역의 정현준이 딱 그만큼의 몫을 해낸 것 같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