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Toulouse-Lautrec),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아트 리뷰2020. 2. 14. 18:35

툴루즈 로트렉 展 (Toulouse-Lautrec), 2020


   겨우 삼십여 년의 삶이 백 년을 넘도록 살아남아 내게 와닿는 건 역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은 귀족 가문에서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 알콜 중독으로 - 그놈의 압생트! - 병원 신세 좀 지다가 5,000여 점의 작품을 남겨야 겨우 가능한 수준의 이야기다. 아니면 뭐 그냥 예수로 태어나든지.

   툴루즈는 몽마르트르에 작업실을 두고 유곽에서 살다시피 했다. 무용수와 배우가 그의 친구들이었고 자연스레 그들은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 유흥과 작업의 구분은 무의미 했고 그 위로 한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한량. 이 단어와 이리도 잘 어울릴 수가 있다니. (아 부럽다)

부유하고 빈둥거리며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자, 그래서 행복의 뒤를 쫓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자. 그는 부유함 속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다른 이들의 복종에 익숙해져 있으며, 우아함 외에 다른 일거리가 없는 이 사람은 언제나, 어떤 때에나 독특하고 완전히 독자적인 외관을 향유할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런 말을 남겼는데 툴루즈의 이야기라 해도 믿을 법하다. 그는 석 달의 짧은 알콜 중독 치료 기간에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기억력의 온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무려 10년 전에 본 서커스를 연작으로 그려낸 것이다. 말의 근육까지 세심하게 표현했는데 실제로 보면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그림으로 자유를 샀다.”고 자랑할만했달까?

   그런 기이한 퇴원을 한 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술 좀 마시지 말라는 친구들을 피해 작업실까지 옮겨가며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인들의 말이나 작품을 보면 툴루즈의 삶은 유쾌했다. 천상병 시인의 유명한 시처럼 그의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 그때쯤이었구나 싶다.